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릭 구톰슨 (문단 편집) === 2009년 === 2009년 [[KIA 타이거즈]]와 계약금 7만 달러, 연봉 23만 달러로 계약하였다. 2009년 시즌 초반에는 리그를 휘어잡는 실력을 보였으나, 시즌 후반부터는 힘이 떨어져서인지 시즌 초반에 비해 적은 5~6이닝이 한계였다. 일본에서도 주로 불펜으로 뛰었기 때문에 선발로서 풀 시즌을 뛰기에는 무리가 있을 법했다. 그래도 그 이닝 동안 거의 실점하지 않으며 KIA의 앞문을 책임졌다. 시즌 초반에는 6선발로 뛰면서 일요일에만 등판, 마치 귀족처럼 관리받는다는 점[* 실제로 당시 [[KIA 타이거즈]]가 6선발을 돌린 가장 큰 이유가 구톰슨이었다. 구톰슨이 "일주일 2번은 못뛴다!"라고 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6선발 체제를 돌린 것.]이 백인에 꽤 나름대로 잘 생긴 귀족스러운 이미지와 합쳐져 구백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. 이 시기 동안은 완벽한 피칭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 기아 마운드가 5선발로 전환하면서 점점 체력에 부담이 온 듯 점차 이닝이팅이나 투구수가 줄어들었다. 그래도 시즌 막판까지 KIA 마운드의 한 축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.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2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고 습관을 들켜서 당한것 같다는 자체 평이 나왔다. 7차전에서 3이닝 2실점을 하였다. 그 2실점은 [[박정권]]에게 맞은 투런 홈런. 타구를 보고 중계진과 타자 박정권 주자 정근우 모두 파울인줄 알았는데 타구가 안으로 휘면서 정말 끝으로 들어왔다.[* 구톰슨은 2009시즌 내내 박정권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. 한국 데뷔전에 결승 투런포를 허용해 패전투수가 되었고 SK와의 최종전에서도 결정적인 솔로포를 허용해 포스트시즌까지 박정권에게만 도합 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.] 2009년 시즌은 13승(공동 4위) 4패, 평균자책점 3.24(6위), WHIP 1.21(2위)를 기록했다. 이렇게 엄청난 성적으로 KIA의 우승을 이끈 구로 원투펀치를 2010 시즌에서도 보길 바란 기아팬들도 많았지만, 재계약협상이 무산되며 결국 2010 시즌에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